5년차 개발자의 이직 이야기
현재 회사(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는 이전 회사)에 재직한지 2년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나는 이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는 회사 생활에 만족했고 돌이켜보면 주니어 개발자로 입사해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고마운 회사였지만, 등따시고 배부르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 시니어가 되어가는 5년차 개발자로서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직을 원하는가
나는 이직을 원한다. 적어도 마음속에 그러한 외침이 있다는 것 정도는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직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리에 멤도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 중 우선순위가 높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 정도를 뽑아보았다.
처우
IT 업계 종사자라면 게임 업계로부터 시작된 2021년의 매서웠던 연봉 인상 러시를 알고 있을 것이다.
개발자의 몸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문득 나는 가성비 좋은 개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서의 내 가치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후에 인터뷰에서도 이직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처우에 대한 아쉬움을 숨김없이 언급하였는데, 이보다 진정성있는 동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
돌아보면 나는 주니어 개발자로 입사해서 많이 성장했다. 운이 좋게도 월 평균 조단위 거래액이 나오는 대규모 커머스 사에 합류했고, 훌륭한 분들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노력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성장 곡선이 완만해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메인에 익숙해지고 관성적으로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비즈니스 상황을 비롯해 여러가지 조직 내부적인 이슈가 겹치며 (전처럼 성장을 도모하기에는) 힘든 상황이 되었다. 시니어 개발자로 가는 길목에서 확실한 모멘텀이 필요했다.
어떤 회사로 갈 것인가
위의 두 가지를 명분삼아 이직을 결심했고 목적지를 물색해야했다.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스타트업이냐, 아니면 기술 회사(소위 말하는 빅테크)냐.
스타트업
스타트업에 합류하면 이직 사유 두 가지 중 처우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특히 매력적인 스톡 옵션은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된다. 또, 작은 조직에서 똘똘뭉쳐 회사를 키워가는 경험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반면 스타트업에서 원하는 대로 개인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급격하게 커나가는 회사에서 신규 서비스를 찍어내느라 바쁘지 않을까.
기술 회사
스타트업에 입사한다면 솔직히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긴 했다. 혹시 회사에서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면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현재 회사에서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기술적으로는 내가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는지 확신이 없었다. 시니어 개발자로서 확실하게 발돋움 할 수 있는 모멘텀이 필요했다. 가령 시장에서 탑티어 개발자들을 쓸어담는 빅테크 회사라면, 수 많은 기술적 챌린지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 진행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차에 때마침 의료 서비스 스타트업 H사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본인 회사에 지원해볼 생각이 없냐고. 개인적으로는 아는 정보가 별로 없던 회사였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알아가보기로 했다.
추가적으로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물류 스타트업 M사, 링크드인에서 리쿠르터로부터 연락을 받아 중고거래 스타트업 B사에 지원하게 되었다. 또 평소 관심이 있었던 기술 회사들에도 동시에 지원을 했다. 흔히 네카라쿠배로 알려진 N사(의 계열사), L사, 그리고 W사의 경력 공채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링크드인을 통해 리쿠르터분께 연락을 받아 C사에도 지원서를 내게 되었다.
스타트업 H사
간단한 코딩 테스트 이후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기술 인터뷰는 CTO께서 직접 진행하셨는데, 다른 회사와는 다르게 기술 철학과 관련된 주제를 심도있게 질문주셨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주제들이었기에 재밌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스타트업 M사
라이브 코딩 테스트를 처음 경험해보았는데 문제들을 꽤 잘풀었던 것 같다. 평소 알고리즘 문제풀이 연습을 해두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 이후 진행되었던 인터뷰들도 꽤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어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스타트업 B사
지금도 뼈아픈 기억인데, 라이브 코딩 테스트 중 탈락을 경험했다.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API를 구현해보는 문제였는데 환경 설정 관련해서 이슈가 있어서 꽤 시간을 허비했다. 아무튼 시간 안에 구현해내지 못했으니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N사
전화 인터뷰 전형에서 탈락했다. 요건과 함께 채팅 시스템을 디자인 해보라는 문제를 주셨는데 나름 최선을 다했으나 아마도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었나보다.
W사
특이하게 1,2차 인터뷰가 같은 날에 진행됐다. 1차 기술 인터뷰를 괜찮게 본 것 같아서 중간 쉬는 시간에 기분좋게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2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2차(Culture Fit) 인터뷰에서 예상 밖의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나머지 횡설수설해버렸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중 그렇게 당황했던 적은 많지 않았는데 이후에도 흔들리는 멘탈을 잡기가 쉽지 않았고 탈락을 예감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는데, 주니어 시절부터 동경하던 회사기도 했고 1차 인터뷰 분위기가 좋았기에 너무도 아쉬웠다.
L사
1, 2차 모두 기술 인터뷰를 진행했다. 1차는 잘봤다는 생각까진 안들었지만 합격을 했고, 2차도 마찬가지였다. 잘한 대답도 있었고 아쉬운 대답도 있었다. 긴가민가한 상황이었는데 최종적으로는 탈락을 했다.
C사
라이브 코딩 인터뷰가 3차례나 진행되었다. 모든 문제를 잘 푼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꽤 괜찮게 클리어를 했다. 조심스럽게 합격 예감을 했고 역시나 최종 합격하게 되어 처우 협상을 진행했다.
좋은 인터뷰
인터뷰는 회사와 내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때문에 인터뷰어의 질문에 좋은 대답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터뷰어에게 좋은 질문을 던져 회사에 대해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충족되어야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한다.
앞서 이번 이직을 통해 내가 얻고 싶은 우선순위는 더 나은 처우와 기술적 성장이라고 했다. 기술 인터뷰에서 처우에 대한 질문을 할 수는 없으니 우선 나의 이직 동기를 분명히 말씀드린 뒤, 이 회사가 과연 내가 기술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회사인지를 직접적으로 물어봤다.
질문을 통해 좋은 대답을 듣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답변도 있었다. 하지만 향후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답변들이었다. 이 밖에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고민
스타트업 H사로부터 가장 먼저 합격 통보를 받았다. 꽤 괜찮은 처우를 제안받아 우선 결정을 위한 일주일의 시간을 요청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회사들에 비해 많이 빠르게 전형이 끝났기 때문에 비교&선택을 할만한 상황은 아니었고 오직 그 회사에 합류할지 말지만 두고 결정을 해야했다.
고민이 길어지던 찰나에, 현재 회사에 합류를 결정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이전 팀장님(지금은 다른 회사로 떠나신)께 연락을 해보았다. 현재 상황을 설명드리고 조언을 구하고자 했는데 이렇게 반문을 당했다.
"OO님이 생각하시는 기술 회사란게 뭐에요?"
제대로 된 대답을 못했다. 그러게.. 내가 생각하는 기술 회사란게 도대체 뭘까. 스타트업과 기술 회사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럼 여기서 말하는 기술 회사란게 뭘까. 또, 반대로 말하면 스타트업은 기술 회사가 아니며 개인의 기술적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
기술회사란
거의 주말 내내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고민했다. 우선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기술 회사는 정리해보자면 결국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밀도있게 모여있는 회사였다. 애초에 생각했던 기술 회사의 이미지는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서로 기술적 챌린지를 주고 받으며 성장해가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것이 꼭 소위 네카라쿠배+로 일컬어지는 빅테크 기업이냐고 물어본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Sendbird나 Moloco 같은 회사는 적어도 내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기술 회사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소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시장의 수준 높은 엔지니어를 쓸어담은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내가 정의하는 기술 회사에 네카라쿠배가 속할 확률은 높다.
스타트업에 간다면
그러면 H사(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된다면 어떨까. 일단 처우에 변화가 생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고민을 덜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선 행복했다. 또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인만큼 함께 회사의 성장을 함께 일구어 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개발자로서 내가 원하는 기술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또 회사에서의 내 역할은 무엇일까.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uncertain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지금 직접 경험해보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나는 그 정도로 도전적인 사람은 아닌가보다. 감사하게도 지인을 통해 회사를 직접 방문해보기도 하고 CTO와의 인터뷰까지 거쳤음에도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음은 분명했다.
최종 결정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국 오퍼를 거절했다. 이 오퍼 거절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크게 보았을때 스타트업 or 기술 회사 합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스타트업 합류에는 더 이상 무게를 두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Never Say Never지만 말이다.
C사는 평소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회사였다. 하지만 계약 여부를 두고서(사실 이 시점에 잔류라는 선택지 또한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는 마지막 고민을 하던차, 합류시 소속될 팀에서 직접 캐주얼 미팅을 요청해오셨다. 팀장님께서 직접 조직의 업무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최종적으로 C사를 선택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어쨌든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한가지 내렸고 이것이 과연 좋은 결정이었는지는 조금 더 지난 미래에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민과 결정의 과정을 기록해두고 두고두고 복기해보고 싶은 마음에 소중한 일요일 오후를 투자하여 글을 남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