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개발일기

[개발일기] 재택 근무 2년 간의 회고

김솔샤르 2022. 4. 21. 22:57

2020년 초.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곧 상황이 안좋아져서 회사에서도 전사 재택 근무라는 초유의 결정이 내려졌고, 정말 뜻밖에도 2년이 지난 지금까지(중간에 회사를 한번 옮겼음에도) 그 생활이 이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막연히 좋기도 했지만 과연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보다 내가 정신줄을 잘 붙잡고(?) 평소처럼 일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재택 근무 2주년을 맞아 다채로웠던 2년 간의 재택 생활을 회고해보고자 한다.

통근 없는 삶

'통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확실히 장점이 많았다. 출근길 2호선에서 시루떡처럼 구겨져서 30분 이상을 시달리지도 않고, 업무를 마친 뒤에는 '집에 또 언제가나'하는 걱정을 하지도 않게 되었다. 출근에 체력 소모를 하지 않으므로 오전 시간을 오히려 활기차게 보낼 수 있게 됐다.
결정적으로는 개인 시간이 많아졌고, 통근에 시달리지 않기 때문에 개인 시간을 활용할 체력도 전보다 충분한 느낌이다. 전보다 하루에 최소 1시간 이상을 업무 외의 활동에 투자할 수 있게된 것만으로 삶의 질이 많이 개선되었다.

일과 삶의 경계

재택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일과 삶의 경계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나는 이전부터 그랬다.
개발자라면 업무 시간에 상관없이 이슈 대응을 해야하기도 하고, 전에 근무하던 회사는 완전한 유연 근무제였기 때문에 서로 업무 시간이 달라 출근 전이나 퇴근 이후에도 업무 관련 문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고 무엇보다.. 원래 잘 안풀리는 문제의 해법에 대한 아이디어는 밥먹다가, 샤워하다가 불연듯 생각나는 법이다. 일과 삶의 경계는 원래 없었고 내가 개발자이기 때문에 그런거니까 딱히 불만도 없었다.

생산성

우려했던 것처럼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사실 목표가 분명하고 명확하다면 집에 있든 사무실에 있든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할 일은 똑같다. 다만 좀 피곤하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사무실에서와는 다르게 잠깐씩 누워있는 일이 가능해졌을 뿐이다.
심지어 재택 근무를 하게 되면서 오전엔 서핑, 오후엔 코딩을 하는 디지털노마드 라이프를 꿈꾸기도 했고 실제로 가능하다는 생각도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필요한 일만 같은 퀄리티로 해낸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커피 타임

커피 타임도, 함께 하는 점심 식사도 사라졌다. 반드시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해야만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 또 친해져야만 업무가 잘되는 것도 아니지만 확실히 업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랜선을 통해서는 스몰 토크를 하기도 어렵고 서로의 감정이 잘 전달되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조금 더 개인의 업무와 목표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된 것 같고 개인적으로 그런 방식으로 일하는게 확실히 재미는 없다.

팀십(Teamship)

나도 요새 문제 많다는 MZ 세대고 회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근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처음으로, 팀십(Teamship)을 만드는데 솔직히 회식만한게 없다고 느꼈다. 지금 회사로 이직해오면서 출근 첫 날 이후로 몇 달 동안 팀원들을 만난 적이 없다. 줌 미팅에서 가끔씩 농담을 주고 받을뿐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 모른채로 몇 달동안 같이 일을 해왔다.
그러다가 거리두기도 풀렸고 마침 계기가 생겨서 처음으로 팀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모두 가상 인물이 아니고 실존하는 사람들이었다), 팀원들에 대해 지난 몇 달간 알아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2시간의 회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진작 이런 자리를 갖고 나서 같이 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솔직히 팀십을 만드는게 회식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태풍이 와도

몇 년 전까지만해도 비바람이 불거나 태풍이 와도 뚫고서 출근을 해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렇게 힘들게 출근해봤자 어차피 노트북 열고 개발밖에 더 했나. '재택 근무해도 되는구나', '별 일 안생기는구나' 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건 코로나의 몇 안되는 순기능인것 같다.


처음 재택 근무를 하고나서 나는 거의 재택 예찬론자가 되었다. 하지만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재택 근무를 지속하면서 Contact가 필요할 때가 있음을 절실히 체감하기도 했다. 지금 시점에서 누군가 내게 주 5일 재택 근무와 주 5일 출근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다면 나는 재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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