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개발일기

한국은 왜 자바 왕국이 됐을까

김솔샤르 2022. 8. 13. 16:32

최근 미국 출신의 엔지니어들과 일해볼 기회가 생겼는데, 대다수의 한국인 개발자들이 자바&스프링으로만 개발을 하는 것에 대해 의아한듯 한마디씩 하는게 인상깊었다.

"자바는 내 생각에 너무 무겁습니다. 파이썬같이 가벼운 기술 기반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네요."

"자바 & 스프링 기반으로 개발을 하는게 진심으로 편한가요?"

나도 경력 초반부터 당연하게 자바&스프링으로 개발을 시작했고 쭉 그래왔으니까 한국은 자바 지분율이 좀 높은 편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근데.. 그러게. 어쩌다 한국은 자바(+스프링) 왕국이 됐을까.

출처 : 네이버 웹툰 대학일기

 

바보야, 문제는 전자정부프레임워크야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개발자들이 전자정부프레임워크를 원흉으로 지목한다. 90년대 후반 웹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하자 국가적 차원에서 웹 프로젝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전자정부프레임워크를 탄생시켰다. 아마도 건설/토목과 같은 분야에서 국가적 표준을 만들어두고 관리하는 것처럼,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 SI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용어나 프로젝트 진행 방식 등에 있어서 건설/토목 분야를 상당히 차용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웹 프로젝트에 필요할만한 공통 모듈을 사전에 모두 만들어둔 전자정부프레임워크 덕분에, 개발자는 도메인 로직을 코드로 풀어내는데만 집중하면 됐다. 이는 SI 프로젝트의 생산성을 크게 개선했을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전자정부프레임워크가 자바와 스프링을 시장의 주력 기술로 만드는데 공헌했다는 주장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초창기 한국 IT 업계는 수요의 절대 다수가 기업의 시스템 전산화를 위한 B2B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기업의 요구사항을 빠르게 구현해주면 몇 년이고 큰 변경없이 사용하다가 시스템이 낡고 노후화되면 다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서 갈아치우는 방식이다(무한 재건축). 마치 건설 프로젝트와 닮아있는 이 방식에서 어떻게 하면 수 많은 시공 인력들이 빠르게, 일관된 퀄리티로 요구사항을 구현해낼 수 있을지가 주된 관심사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스프링은 정답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가 도래한 이후 세상이 변했다. 수많은 B2C 서비스가 쏟아져 나왔고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한 인터넷 비즈니스가 대세가 되면서 IT 업계의 산업 환경도 변했다. 이제 시시각각 변하는 사용자들의 요구사항에 빠르게 대응해야 했고 과거와 같은 방법론이 통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프로젝트 방법론적으로는 애자일 프로세스이며 기술적으로는 Micro Service Architecture(MSA)이다(명료한 인과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MSA로 인해 더 이상 정형화된 기술 스택/구조를 강제할 필요가 없어졌다.

예전에는 건축물이 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부수고 다시 지었다면 요즘은 계단만 관리하는 계단 전문팀, 유리창만 관리하는 유리창 전문 팀이 있어서 각 팀이 고객의 요구에 맞게 수시로 계단, 유리창을 지지고 볶는다. 심지어 계단이 모듈화(?) 되어있기 때문에 떼어내고 새로운 계단으로 갈아끼우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은행의 코어 뱅킹 시스템같이 몇 년 주기의 무한 재건축이 아직 유효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시대, 환경적 변화로 인해 이제 IT 프로젝트에 있어 자바&스프링이 언제 어디서나 정답일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왜 자바 왕국이 됐는데?

프로그램의 구조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고민때문에 객체 지향이 탄생했고, 높은 이식성때문에 자바가 각광받았다.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정형화된 해결 방식을 정의하기 위해 디자인 패턴이 탄생했고 발전해서 스프링과 같은 프레임워크가 탄생했다. 하지만 한국은 여기서 한층 더 노력(?)했다. 시스템 전산화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던 시기에, 산업계에서 공통적인 수요가 있는 기능들을 모듈화한 전자정부프레임워크를 탄생시켰다. 심지어 IT 인력을 양성한다는 명목으로 정부 차원의 국비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심장에 자바와 스프링을 탑재한 개발자들이 시장에 쏟아졌다.

그런 개발자들이 IT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전자정부프레임워크로 개발을 했고 자연스럽게 스프링과 자바가 IT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전체 IT 시장에서 SI 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았고 요즘 개발자들에게 각광받는 서비스 회사(네카라같은)들도 따지고 보면 그 시절의 SI 개발자들이 의기투합해 세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그 영향이 전해져 자바와 스프링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바 왕국 에필로그

한편으로 정부 차원의 표준화와 IT 인력 양성을 위한 노력이 시장을 자바와 스프링에 매몰되게 만들었고 오히려 소프트웨어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노력 덕분에 오늘날의 수많은 IT 회사들이 탄생했을테니까 온전히 잘못된 일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분명 한국 IT 업계도 이제 시대 흐름을 빠르게 쫓아가고 있으니 머지 않은 미래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피드백 및 반박 환영합니다.

 

참고

https://www.egovframe.go.kr/home/main.do

 

표준프레임워크 포털 eGovFrame

 

www.egovfram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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