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피겨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러시아의 메드베데바가 우승을 했다. 그런데 이 소식이 한국에서 꽤 관심거리였다. 왜냐면 메드베데바가 바로 김연아의 기록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 김연아의 '기록'을 깨버렸다. 나는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는데, 기사 댓글란을 보니 네티즌들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주류 반응들만 놓고보자면 기본적으로 그들은 메드베데바의 기록이나 경기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며 메드베데바가 비리 혹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거의 기정 사실인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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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렵다. 메드베데바 정말 불합리한 수단을 사용했다거나 혜택을 받아 경쟁하는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녀 또한 재능이 넘치며 열심히 노력한 선수이다. 그런데 단지 김연아의 '기록'을 깼다는 사실때문에, 실력이 형편없는데도 불구하고 불합리하게도 대단한 이득을 본 선수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왜 한국 네티즌들은 이토록 기록에 집착할까.
우리나라 선수의 기록이 누군가에 의해서 갱신되는 것이 그렇게 분하고 억울한 일인가. 물론 나 역시 아쉽기는 하다. 박지성의 아시아인 골기록을 카가와신지가 깨버렸을때 너무도 아쉬웠다. 하지만 카가와신지의 플레이를 폄하하거나 깎아내리지는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피겨라는 스포츠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다고는 보지 않는다. 단지 기록에 집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성숙하지 못한 태도이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편협하고 옹졸한 사고방식이며 스포츠에 대한 몰이해를 반증하는 것이다. 스포츠에 있어 기술과 더불어 선수들의 기량은 발전한다. 룰 또한 변화하기 마련이다.
나는 피겨를 잘 알지는 못하므로 축구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과거의 브라질 호나우두보다 현재의 메시, 호날두, 수아레즈같은 선수가 단연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축구에서 다른 시대의 선수를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논란이 따르지만 과거 선수에 비해 현시대 선수들이 훨씬 발전된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선수들이 평균 체격과 전술의 발전뿐 아니라 인프라와 룰, 체계의 발전 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맞물려 성장해온 결과이다.
피겨 역시 스포츠이므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가 지나며 선수들의 기량은 다른 여러가지 요소들과 맞물려 성장한다. 룰 또한 바뀌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메드베데바가 김연아의 '기록'을 깬것이 그렇게 억울할 일인가? 김연아에게 묻고싶기도 하다. 아마 본인은 메드베데바 선수에게 축하의 뜻을 보냈을 것 같다. 스포츠에서 기록이란 깨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과거 선수가 세운 대단한 업적이 훼손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끔 스포츠에 광적으로 빠져(나 역시 그렇지만) 너무도 베타적이고 비정상적인 태도를 보일때가 있다. 하지만 스포츠를 스포츠 자체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조금 더 필요하다. 스포츠는 전쟁이 아니며, 과하게 애국심을 투영해서도 안된다. 과거 올림픽 순위를 통해 우리나라의 이름을 알리던 시기는 이제 지나지 않았는가? 김연아의 기록에 집착하는 일은 올림픽 순위에 열광하는 태도와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약소국이었던 과거, 사람들은 국가의 위상을 높여주던 올림픽 메달에 열광했었다. 한국 사람들의 스포츠에 대한 태도가 거기서부터 이어져온 것이며 그게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면 실로 불행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즐길때도 되지 않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심도깊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우리는 여전히 스포츠를 스포츠 자체로서 즐기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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